주현절 후 첫번째 주일 “기대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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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기도”
“기대와 기도”
15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 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17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18 요한은 그 밖에도, 많은 일을 권면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19 그러나 분봉왕 헤롯은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관련된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 때문에,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고,
20 거기에다가 또 다른 악행을 보태었으니, 요한을 옥에 가둔 것이다.
21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활동하던 세례요한이 메뚜기를 먹고 털옷을 걸치고 회개하라고 외치던 그 때는 어떤 때였을까요
1. 정치적인 어려움: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헤롯가문 식민지 분봉왕으로 와서 통치, 유대인들은 경제적 착취, 억압
기대: 로마의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시켜주고 다윗 왕국을 회복하게 해줄 메시아
요한은 정치적이 아니라 영적회개를 강조
2. 종교적어려움: 식민시대였지만 종교적인 것은 유대사회에 맡겨둠,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통제
사도개인:부유한 엘리트 계층의 종교인들, 정치적 권력에 타협
바리새인: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들,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냄
백성들에게 율법의 형식, 종교적 형식만 강조, 예수님이 책망한 사람들
3. 사회적 어려움: 사회 분위기가 도덕, 윤리 타락 다스리고 있는 지도자의 방탕한 타락이 사회 영향을 줌
세례요한이 마지막 죽임을 당한 이유, 헤롯안티파스의 방탕한 삶을 비판해서 죽게 됨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메시아의 대한 기대가 더욱 간절해 졌습니다.
말라기 3:1 (NKSV)
1 “내가 나의 특사를 보내겠다. 그가 나의 갈 길을 닦을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주가, 문득 자기의 궁궐에 이를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그 언약의 특사가 이를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런 상황가운데 요한은 기이한 모습으로 회개하라고 했을때 사람들은 요한이 메시아인줄 알았습니다.
요한이 오기까지 이스라엘 역사속에 메시아급의 사람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것을 “그리스도, 메시아를 예표”한다라고 합니다. 메시아의 모형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담, 멜기세덱, 아브라함, 이삭,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여러 사사들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약에 등장합니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는 거의 모두가 메시아를 예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보니 구약의 기록들이 모두 오실 메시아의 대한 내용이네요. 한마디로 구약의 기록은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대한 내용입니다.
구약에서는 각각 여러가지 다른 상황가운데서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의 일부분들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같이 시대적으로도 절실하게 메시아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세례요한의 때도 그러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절실하게 메시아가 필요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에서부터 이어져 온 메시아를 예표하는 사람들 중에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백성들앞에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 되는 세례요한 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비참함을 씻어주는 세례를 베풀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뭐 좀 다른게 있나요?
우리도 정치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부재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말도 못하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규모있는 건설업체가 30개나 부도가 났답니다. 코로나때보다 폐업율이 훨씬 더 높답니다.
종교는 또 어떻습니까.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규모키우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 자신의 유명세를 지키기위해 애쓰고, 이득을 누리려고 불법을 저지릅니다. 종교호감도를 조사했는데
개신교14.3, 불교52.9 천주교48.5, 원불교17.9 가 나왔습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종교의 대해 매우 부정적 항목에서는 3개 종교 중 가장 높게 41%가 나왔습니다. 불교20, 천주교22%였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그림자가 너무도 짙어져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 수 있습니까.
더이상 정치지도자에게 기대할것은 없습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어디에 기대를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같이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고 하늘이 열립니다.
누가복음 3:22 (NKRV)
22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요한에게 쏠려 있었는데 예수님이 세례 받는 순간 이제 모든 시선이 예수께로 옮겨졌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마가복음 1:9–11 (NKSV)
9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예수께서 물 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11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하나님의 시선이 예수께로 향하고 그리고 백성들의 시선도 예수께로 향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붙들어야 되는 것은
기대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어려운 상황들을 경험하고 아픔을 경험합니다. 또한 이 시대적 어려움은 아무도 비껴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서 여전히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더 나은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농사를 시작해야 될 즈음에 극심한 가뭄이 왔습니다. 씨를 뿌려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가뭄에 씨뿌려도 소용없다며 포기하거나
밭을 돌보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한 농부는 가뭄에도 씨를 심고, 물을 줄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주고 돌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비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씨앗을 심지 않으면 비가 와도 수확을 할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큰 비가 왔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씨앗을 심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 농부의 밭에만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하게 그 사람만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기대는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는 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올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기록중 아주 특이한 기록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전, 눅3:20
20 거기에다가 또 다른 악행을 보태었으니, 요한을 옥에 가둔 것이다.
세례요한이 옥에 갇히고 그의 사역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먼저 씁니다. 그리고 다시 요한에게 세례받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예표하던 모형이었던 수많은 선지자들 처럼 요한의 세계도 메시아 앞에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형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모형에게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대입니다. 올한해 우리 예수그리스도께 시선을 두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며 삽시다.
2. 두번째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누가복음의 특이한 기록이 또 있는데, 바로 21절입니다.
21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세례받으시고 기도했다라는 표현이 유일학게 누가복음만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 중 기도하는 장면을 참 많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누가복음 6:12 “12 그 무렵에 예수께서 기도하려고 산으로 떠나가서, 밤을 새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누가복음 9:18 “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누가복음 9:29 “29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누가복음 11:1 “1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누가복음 22:41 “41 그들과 헤어져서,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누가는 성령과 기도의 대해 아주 중요하게 기록을 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던 중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대관식이 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메시아인줄 알았지만 모형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메시아로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시편 2:6–7 “6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 을 세웠다” 하신다. 7 “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시편에서 메시아를 선언할 때의 예언의 메세지가 예수께서 세례받는 그날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메시아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하고 힘을 얻으신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 어려운 때에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합니다.
좌절할 수 밖에 없고, 기대할 수 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이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시면서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고 말씀해 주십니다.
작은 별 이야기 알지요.
수많은 별들 중에 유독 너무도 작은 별 하나가 있었습니다. 다른 별보다 밝지도 않았습니다.
큰 별들은 우쭐대며 서로의 이름들을 불러주며 대화했지만 아무도 이 작은 별의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고 말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작은 별은 “나는 너무 작아서 ㅇ무 쓸모가 없어,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도 않아, 이름도 없고 작은 나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라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땅에서 밤하늘을 구경하는 한 어린아이가 작은 별을 발견하고는 그렇게 말합니다
“와, 저기 아주 작고 예쁜 결이 하나 있네, 저 별은 “희망”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겠는걸”
밤이되면 그 어린아이가 작은 별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습니다.
“희망별아, 오늘도 잘 있었니? 나는 너를 볼때마다 용기가 생겨”
그런데 이 작은별은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때마다 빛이 더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지만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자 빛을 되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기도중에 불러 주십니다.
올 한해 기도의 습관을 더 많이 만들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께서 확인해 주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잖아, 너는 내 기쁨이잖아, 너는 내 사랑이잖아, 이렇게 낙심하고 있으면 안돼, 일어나라~~~
한주동안
우리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하나님을 향한 기대로 살아갑시다. 땅에 시선을 두지 말고 하늘을 향해 시선을 둡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걱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름을 불러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